6일째 2010. 09. 28
날씨는 - 비오락가락 바람불고 쌀쌀함.
동유럽 또는 서유럽여행은 5월 말경부터 6월초가 좋다고 하네요.
하지만 우리나라 장마처럼 폭우는 아니고 오락가락하는 가는 빗줄기 정도 입니다
저기압 지역이라 약간은 음식을 짜게 먹어야 저혈압을 방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이곳의 음식이 약간 짜도 그냥 드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2차세계대전의 아픈 상흔이 남아 있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입니다.
어제는 소금광산 천국을 노닐었는데 오늘은 지옥체험 입니다.
2차대전 당시 유대인 박해및 학살의 진상
첫째 - 1차대전직후까지 독일은 유대인에 대해 관대했다
유태인 박해는 다른 유럽국가들이 심했으며 독일은 오히려 관대했다. 그래서 많은 유태인들이 2차대전 전에는 독일에 가장 많이 거주 했다. 그리고 독일계 유태인 금융제벌인 막스바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걸로 유명하다.
둘째 - 독일은 유태인들에 대해 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다
독일 유태인들은 다른 유럽국에 비해 출세나 사업을 하기 쉬웠고 이들은 학계, 법조계, 의학계, 금융계, 언론계등 독일사회 전분야를 장악할수 있었지만 유태인들은 독일사회와 화합하려 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일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원인이된다(1992년 LA폭동때 빈민폭도들이 자수성가한 한인교포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약탈한것과, 인도네시아 폭동때 짱골라교포들이 원주민들에게 당한것과 같은 이치이다)
셋째 - 독일은 유태인의 독립국가 형성에 신경을 썼다
1933~1941년 까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독일의 밀텐슈타인이 유대인이주를 하인리히 히믈러 SS사령관은 시온주의자의 대아랍 지하군사 조직인 '하가나'의 활동을 도왔다.), 1942년 요제프 괴밸스의 본격적인 유태인박해 주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유태인 학살 보다는 그들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으로 보내 그들만의 국가를 형성시키고 나중에 독일의 우방으로 삶으려 했다.
넷째 - 독일의 등뒤에 칼을 꽃은 유태인
독일이 친영국 성향의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하자 당시 독일의 경제를 잡고 있던 유태인들은 독일을 굴복시키기위해 독일의 수출을 분쇄시키고 전세계적인 독일상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활동을 신성한 전쟁이라고 하면서 세계 유태인경제 연합회 회장인 운터마이어가 앞장을 선다 뿐만아니라 전쟁중에 일부 유태인이 연합군과 결탁하여 연합군의 폭격을 유도하는 신호등을 장착하는 등의 밀정행위를 하자 히틀러는 모든 유태인을 소용소에 강금 시킨다.
이쯤되면 유대인의 행위는 국가 반역죄에 해당되며 국가반역죄는 어느나라에서나 사형에 해당 된다.
다섯째 - 그러나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만다
시온의 칙훈서(유태인의 세계경영지침서)가 발견되어 알려지고, 공산당활동에 유태인들의 간접협조한 혐의와, 1936년 프랑스주체 독일 외교관을 암살하자 반유대감정으로 독일이 들끓기 시작했고 크리스탈학살 사건으로 유태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더이상의 피해를 막기위해 유태인이 학살당하지 않도록 2만명의 유태인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수용하게 된다.
좀더 덧붙여서 말하자면 독일을 패하게 만든 세계 1차대전의 배후에는 바질 자하로프라는 유대인 전쟁무기상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영국의 군수제벌인 빅커스사의 영업이사로써 친독적인 그리스 국왕을 추방하여 세계대전의 장기화를 획책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군사기밀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빼돌린 사실 하나 만으로도 독일이 유대인을 증오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수류탄은 독일의 기술로 만들어진 수류탄으로써 이 성능좋은 독일제 수류탄이 독일군을 죽이는 촌극까지 벌어지게 된다.
여섯째 - 유태인 600만 학살은 조작 확대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발진티푸스와 장티푸스)
실제로는 60만정도이며 그것도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과 전염병(더이상의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시체들을 소각하게 된다)으로 사망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25(7.6평)평방미터 되는 곳에 7~800명을 집어넣고 독가스로 죽였다는데, 실제론 그런 계산이 안나옴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전시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소각로는 194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탈린의 소련군 또한 폴란드 유태인을 많이 죽였으며 나중에 이것마저 독일의 만행으로 뒤집어 쓰게 된다.
정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현판
수용소 막사
여자수용소의 2중 전기철책
철도까지 연결되어 플랫폼도 있구요
수용소 입구
안경
뻬치카
벗어놓은 신발들
빗도 보이고
여성들 화장품
수용자들의 각종기록
수용되는 장면
수용소 도착후의 모습
유럽전역에서 모입니다
그당시 모형객차 좌측상부에 조그마한 숨구멍만 하나 있네요
무정차로 유럽전역에서 끌려온 수용자등........
완전히 나체와 삭발된 수용자들..........
화장로
그당시 사용된 시안화 독가스통들("치클론-B" 공기와 접촉하면 시안화 수소가스 : 맹독성)
머리카락 약 200여톤이나 ..............
용도가 직물에서부터 무기까지(뇌관의 일부로 사용되고)
개스실로 집어넣는 삽화
수용자들의 사진 기록들
나중에는 무조건 학살 했다네요......
수용자들의 의류
그 당시 집시가 제일 우선수용대상이고 유대인은 순위가 조금 밀려나 있네요
독일 점령지가 늘어나자 배후치안이 불안한 나머지 조금만 불손한 기미만 보이면 채포 수용대상이 되었을 .....
전쟁 종료후 구출한 수용자 여인의 모습
저 구멍으로 독가스가.........
이곳에 모아놓고 샤워 시켜준다며 알몸으로 .........
화장로 1946년도에 재생시켜 설치한....
폴)Oświęcim. AuschwitzBirkenau라고도 함.
갈리치아에 있는 폴란드 마을 오슈비엥침 부근에 있었던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1940년 4월 27일 하인리히 히믈러가 첫번째 수용소 건립을 명령했으며, 같은 해 6월 14일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송되어왔다. 이 작은 '아우슈비츠 1호'에는 주로 폴란드와 독일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1941년 10월 인근의 브제진카(독일어로는 '비르케나우') 마을 외곽에 비르케나우라고도 불렸던 '아우슈비츠 2호'를 증축했다. 그뒤 나치 친위대(SS)가 아우슈비츠 2호를, 가스로 죄수들을 처형하는 데 사용한 바데안슈탈트('목욕탕'),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데 사용한 라이헨켈러('시체보관실'), 아인에셔룽스외펜('화장막') 등을 갖춘 대규모 집단 처형소로 개발했다. 이는 모두 유럽 유대인들의 멸종을 위한 '최후의 해결책'이었다. 1942년 5월에 세워졌고 후에 '아우슈비츠 3호'라고 명명된 드보리 마을 부근의 또다른 수용소는 부근 IG 파르벤의 대규모 화학합성고무농장에 노동자들을 공급해주는 강제노동수용소가 되었다. 1940~45년에 모든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의 명령권자는 친위대 대장 루돌프 프란츠 회스였다.
유대인들은 화물차에 실려오는 대로 '선별'되어 젊고 능력 있는 남자와 여자들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노약자 및 어린이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은 살해되었다. 강제노동자들 가운데 과로·질병·굶주림 등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선별하여 제거했다. 수용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학실험의 예로는 값싸고 신속하게 불임을 시키거나 살해하는 방법, 아리안족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찾기 위한 쌍둥이들의 시체검시 등이 있었다. 악명 높은 의사 요제프 멩겔레가 쌍둥이 부검실험을 지휘했으며 선별작업을 감독했다. 소련군이 진격해오자 아우슈비츠는 차츰 폐기되어 갔고 생존한 대부분의 포로들은 1945년 1월 17일 다하우·마우트하우젠을 비롯한 다른 독일 집단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남겨진 7,650명의 포로들은 10일 뒤 이곳에 도착한 소련군에 의해 발견되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의 총사망자수는 보통 100만~250만 명이라고 할 정도로 그 추산 폭이 크지만 4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이도 있다.→ 홀로코스트
수용소 소장이 취후를 맞이한 교수대
지옥을 탈출합니다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검문소
역할은 사라졌지만 건물은 남아있네요...
체코의 전원마을 프라하 야경보기 위해 부지런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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