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4국 다녀오다(6일 프랑스-1)
베르사이유 궁전(박물관) 입니다
미술에 전혀 조예가 없어 사진만 몇컷 올려봅니다
베르사이유 관련자료(다음 백과사전 퍼옴)
프랑스 북부 파리 지방 이블린 주의 주도.
파리 시에서 남서쪽으로 22km 떨어진 이 도시는 17세기에 루이 14세가 건립한 이래 100년 이상이나 프랑스 왕들이 거처하면서 국사를 처리한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프랑스 혁명 최초의 중심 무대이기도 했던 이 궁전의 정원들은 앙드레 르 노트르의 걸작품으로 프랑스 유형문화재의 일부이자 유럽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사적지의 하나가 되었다. 이 웅장한 궁전은 원래 연회장으로 건립되었지만 국사를 처리하는 정청으로서의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왕실에 딸린 인원이 약 2만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약 1,000명의 조신이 4,000명의 수행원과 함께 이 궁전 안에서 살았다. 약 1만 4,000명의 병사와 종복들은 별채 건물들과 마을에 배치되었는데, 1671년에 건립된 마을은 1715년 루이 14세가 죽었을 때 그 인구가 3만 명이나 되었다.
루이 15세는 재위기간 동안 선왕이 시작한 건축사업을 계속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은 사치스런 왕실생활의 상징물이 되었다. 1837년에 궁전을 복원한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모든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으로서 개조했다. 1870년에 파리를 침공한 독일군이 베르사유를 그들의 본부로 사용했으며, 1871년에는 독일 황제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프랑스-독일의 평화조약 체결 후 8년 동안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의회의 의사당 건물로 이용되었으며, 1875년 제3공화국의 헌법이 이곳에서 반포되었다. 또한 제3공화정과 제4공화정의 대통령들이 이곳 베르사유에서 선출되었다. 연합국과 독일 사이의 베르사유 조약(1919) 체결 장소가 된 궁전은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에 다시 복구되고 현대화되었다.
베르사유 시는 현재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며, 파리 시의 교외주거지이다. 관광명소가 된 궁전은 외국 원수들이 방문했을 때 묵는 곳으로 이용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인 사토리에 생루이 대성당이 있고 북쪽의 신시가지인 르셰스네에 노트르담 교회가 있다. 베르사유는 육군 병원과 육군 공병·포병 학교가 있는 중요한 군사도시이자 상업과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으로는 증류주 제조업, 피혁업, 시장용 원예업 등이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정원에 부속된 원예학교(1874)가 있다. 인구 91,014(1982).
**특히 야외정원이 멋지구요 원래 2,400Ha에서 현재 800Ha정도라네요
이또한 엄청난 규모 입니다.
에티켓의 어원이 여기서 유래가 되었고, 루이16세 파리 대혁명당시 궁성근위병은 스위스의용병 700여명이 수비하고 있다, 왕명으로 시민에 대항하지 않고 모두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스위스 루쩨른의 슬픈사자상이 이당시 처형당한 용병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기념물 입니다
이제부터는 베르사이유 궁전박물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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